“[.]A Period – 생리에 관하여” 공연을 마치고…

[.]A Period-생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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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5년 4월 4일 오후 5시

장소: 문래동 Yokko Studio(문래 3가 54-34번지 지하 1층)

<공연팀>

제작: 작은극장H(Theatre H)  작/연출/출연: 한혜민

음악: 한혜신,  음향오퍼: 박동조, 조명: 조성옥, 영상/디자인: (켡)박현지

사진촬영: Seany(셔니)/ 주말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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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부터 나는 생리가 정말로 싫었다. 누군가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날래?’하고 물으면 여자는 생리를 한다는 이유로 내 대답은 항상 노!였다.

생리를 시작할 즈음 배와 허리에서 쿠욱하고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아니, 벌써 한 달이 지나버렸던 말이야?’ 시간이 이토록 빠르게 지나갔음이 놀랍기만 하다. 허리가 살살 아파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일정을 확인한다. 주말이면 차라리 다행이다. 예정과 다르게 중요한 일정이나 혹은 공연과 같은 움직임이 많은 날에 겹치면 정말 그야말로 최악이다. 문득 뜨거운 어느 여름날 인도에서 겪었던 생리의 기억이 아찔하게 떠오른다.

생리가 시작되면 난 그날 하루를 ‘버린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가 어서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정에는 진통제로 끙얼대며 버티고, 친한 친구와의 잡혀있던 일정에는 ‘ 언니 오늘 생리 터졌다’며 취소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연락에는 ‘오늘 몸이 안 좋아서…’하며 얼버무리고 만다. 괜히 내가 변명하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왜 떳떳하게 ‘나 오늘 생리한다’고 할 수 없는 거지?

방 한 구석에 배를 움켜쥐고 누워 홀로 끙끙대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린다. 누가 들어주는 것도 아닌데도 난 가끔 억지로 눈물을 짜내며 소리 내어 울기도 한다. 가끔은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서만 이러고 있는 건, 그것도 이것을 1년에 13번, 매번 4-5일, 살면서 거의 반년가까이 되는 날 동안 겪어야 한다는 것은 왠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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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를 살펴봤다. 중학생의 나는 ‘정말 싫다. 불공평하다. 왜 여자만 생리를 하는 걸까? 전쟁이다’등 이 녀석에 대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불편한 마음들을 끄적거려 놓았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난 내가 여자로서 왜 생리를 하는지 누구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명쾌하게 알지 못한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다. 그 사실에 놀랐다. 그 실체에 대해서는 확실히 모른 채 욕만 해댔다니. 그토록 매일 내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변화에 나는 눈을 부릅뜨고 적대시하기만 했던 것이다.

내가 무신경했던 걸까. 공연을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아본 최근에야 생리주기에 따라 내 몸과 마음이 변화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유를 찾지 못한 채 홀로 눈물을 글썽이고 울적해 할 때, 단 것을 안 좋아하는 내가 갑자기 초콜릿을 마구 먹게 될 때 등 이 것이 다 이 녀석과 관계가 있었다니…! 그리고 그동안 나는 그저 ‘내가 왜 이러지’하곤 지나쳤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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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한 이야기로 공연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치유’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위험한’ 과정으로 느껴지기마저 한다. 하지만, 결국 모든 예술은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던가? 타인의 우선권을 자신의 우선권과 혼동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스물스물 기어 나오는 두려움을 창작의 밑거름으로 전환하려고 했다. 쉽진 않지만.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를 항상 괴롭히는 그것! 바로 창작과정에 있어서의 불확실성이다. 최근 우연히 읽은 ‘Art&Fear’라는 책에서는 ‘정말로 필요한 것은 예술 창조과정에서의 오류와 새로이 발견되는 것들을 포용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이다. 불확실성은 예술 창조 욕구의 본질로서, 피할 수 없으며 절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인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가 성공의 필수조건이다.’라고 했다. 이 문구를 되새기며 불확실성을 한 일부로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아마 이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동안 주로 홀로 작업을 하던 내가 이번엔 조명, 음악, 영상디자인 스텝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이 놈의 불안감은 더더욱 커져 나를 짓눌러댔다. 아마도 이 모든 불확실한 과정에 있어 그들에게 ‘작품’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자 했던 스스로 만들어낸 부담감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번 작업에 있어 이 ‘불확실성’에 대한 매력을 한층 더 이해하게 되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이미지와 생각들이 연결되고, 선택되고, 제거되고, 연습을 통해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항상 ‘미지수’였지만 그것이 매 순간의 ‘열려있음’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서 발전되어가는 창작의 과정, 그리고 그것이 관객들을 만났을 때의 그 순간의 느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매력.

어찌 이를 멈출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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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즐거우면서도 동시에 만만치 않은 일이다. 처음에 작품을 기획할 때에 나에겐 크나큰 그림과 기대가 존재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어느 책자를 통해 연락을 해 직접 디자이너를 만나기도 하고, 음악을 하시는 분과 함께 꾸준히 미팅을 가지며 작품과 어우러지는 음악을 작곡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신기했던 만남들 이후 어느새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고 각자의 바쁜 일정들로 인해 우리는 결국 모든 공연 팀 멤버가 한 번도 다 같이 만나보지 못한 채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누구도 나에게 ‘넌 이러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해’라고 한 적이 없음에도 난 언젠가부터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어떠한 전형적인 ‘연출가’의 이미지에 나를 구겨 넣으려 한 것 같다. 무언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으면 그것이 모두 ‘나의 탓’인 것만 같은 것. 홀로 작업할 때보다 그 책임감의 무게가 몇 배로 크게 다가온 것이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함정에 빠지면 안 될 일이다.

아직 풀리지 않는 협력 작업에 있어서의 질문이 남는다. 어떻게 각기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내면서도 동시에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각자의 작업으로서 느끼고 가져갈 수 있을까? 앞으로 더 다양하게 작업을 이어가며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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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선보이는 작품인지라 많이 부족하기도 하고, 떨리고, 관객들이 어떻게 볼까 참 궁금했다. 남성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자신의 삶 사이에 너무 거리감이 느껴지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여성 지인관객이 다가와 ‘정말 공감 됬다’라고 했을 때, 남성관객이 ‘그런 줄 몰랐다’며 공연을 통해 여성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을 때, 마음이 마구 요동쳤다. 공연은 관객과 만나 함께하는 그 ‘순간’의 것이기에. 그 빛나는 순간에 관객과 함께 연결되어 있을 수 있음이 나를 벅차게 했다.

이제,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계속 지속되는 작업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다양한 청소년, 여성, 남성관객을 만나고 싶다. 풀어놓지 못했던, 홀로 깊숙이 쌓아두고 있던 고민과 마음들을 달래고, 또 자신과 타인을 더욱 이해하게 되는 계기로서 공연이 하나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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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속가능한 공연을 꿈꾼다. 공연과 함께 성장하는 삶을 바란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는 경험들을 하게 되었을 때, 언젠가 지금의 엄마 나이가 되어 엄마가 말하던 ‘아침에 머리가 핑돌고 기분이 이상한’느낌을 갖게 될 때, 그보다 더 나이가 들게 되었을 때… 나의 삶과 함께 공연도 하나씩 하나씩 자라나있지 않을까.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이 공연을 하게 될 때 공연의 색깔이 어떻게 닮고 또 어떻게 달라져있을지 벌써부터 설레온다. 생리를 바라보는 내 관점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그러므로, 이것은 또 하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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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관객들과 함께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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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 클릭)

https://hyeminhan.com/2015/03/23/showcase/

About hyeminhan

- Independent Performing Artists. - Founder of Theatre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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